조커 (내적갈등, 상징, 사회비판)
슈퍼히어로 영화의 악당 탄생기라는 틀을 빌렸지만, 이 영화는 한 개인의 광기가 사회로부터 시작됐다는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화려한 액션이나 통쾌한 대결 장면을 기대하고 봤다가는 당황하기 딱 좋은 영화다.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 불편함 자체가 이 영화가 노리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내적갈등: 소피는 없었다
아서 플렉은 뜻하지 않은 순간 발작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신경 질환을 앓고 있다. 정작 본인은 전혀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해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시선을 받아야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가장 힘든 일은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 것이라는 그의 독백은 이 캐릭터의 고통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광대로 일하던 그는 해고당한 뒤 사무실 계단에 붙은 웃음을 잊지 말라는 문구에서 잊지 말라는 부분을 지워버린다. 더 이상 강요된 웃음을 짓지 않겠다는, 말없는 저항이다. 사회가 정신질환자에게 요구하는 건 이해가 아니라 그저 티 내지 말라는 침묵. 다시 보니 이 몸짓 하나가 그걸 정확히 짚어낸다. 이 영화는 아서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도 신뢰할 수 없게 그려낸다. 이웃 여성 소피와 다정하게 데이트를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장면들은 후반부에 이르러 전부 아서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관객이 함께 믿어온 몇 안 되는 다정한 순간마저 허구였던 것이다. 이 반전은 단순한 트릭이 아니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그의 내면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요약: 발작적인 웃음이라는 질환을 가진 아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짓눌리는데, 웃음 문구를 지워버리는 행동은 그 강요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다.
상징: 웃음 대신 춤
아서는 자신을 짓누르던 삶의 무게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순간, 동네의 긴 계단을 춤을 추며 내려간다. 이 계단은 그가 그동안 지치고 무거운 몸으로 힘겹게 올랐던 공간이었지만,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순간부터는 오히려 경쾌하게 내려가는 무대로 바뀐다. 이 장면은 그가 사회의 기준에서 완전히 이탈해 자신만의 논리 속으로 들어섰다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한 인간이 무너지는 순간을 이렇게 리듬감 있는 춤으로 표현하다니, 돌이켜보면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매혹적이다. 광기와 해방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었나 싶다.
요약: 아서가 계단을 춤추며 내려가는 장면은 그가 사회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논리 속으로 들어섰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다.
사회비판: 아무도 돕지 않았다
아서가 지하철에서 자신을 조롱하던 사람들을 살해한 뒤, 고담 시의 빈민들은 오히려 그를 광대 가면을 쓴 영웅처럼 떠받들기 시작한다. 부유층을 향한 분노가 누적되어 있던 도시에서, 아서의 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균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영화는 아서 개인을 동정하거나 정당화하는 대신, 그를 만들어낸 배경에 냉정한 시선을 던진다. 복지 예산이 삭감되어 상담조차 받을 수 없게 된 상황, 그를 조롱하고 무시했던 주변 사람들, 가난을 경멸하는 부유층의 태도까지 겹겹이 쌓인 결과가 결국 한 사람을 조커로 만든 셈이다. 여기에 더해 아서는 자신을 입양해 키운 어머니 페니의 진료 기록을 몰래 빼내 읽다가, 자신이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고 어머니가 이를 방관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알게 된다.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에 가정 안에서 겪은 학대까지 겹쳐지면서, 이 인물이 무너져온 과정은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여러 겹의 실패가 쌓인 결과라는 게 더욱 분명해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가 광기 자체보다, 그 광기가 자라난 토양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만든다. 다 보고 나서도 아서를 마냥 미워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를 만든 게 한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그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무관심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관객 각자도 이 도시의 방관자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